2007년 09월 18일
아프간 피랍 & 용서...
아프간 경찰 "한국인납치 주도 압둘라잔 피살"
이 뉴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특히나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어떤 사람들은 2명의 순교자 21명의 고통받은 사람들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보복(심판)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탈레반 지도자가 죽은 것에 대해서 너무가 속시원해 하고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신문보도를 보면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솔직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이 부족하다.
이 신문기사의 제목을 보고 바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용서"라는 단어이다. "용서" 너무나 무거운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용서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단어의 무게를 공감할 것이다.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용서를 해야하는 사람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탈레반을 용서할 수 있을까? 탈레반에 의해서 순교당한 2분의 가족들은 이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 우리가 탈레반을 용서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분들이 탈레반을 용서하는 것은 그 용서의 무게가 너무나 다르다.
용서의 무게가 크면 클수록 값진 용서이다. 우리가 탈레반을 용서하는 것은 가벼운 용서 일수 있지만 23명의 피랍자 가족의 용서는 너무나 숭고하고 값진 용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용서하라고 요구하거나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용서는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것이다. 누구도 용서를 강요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용서하지 않는 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이다. 용서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용서없는 세상이란, 상상하기도 너무나 무섭다. 예컨대, 내가 출근하다가 지하철에서 누군가 나의 발을 밟았다고 생각해보자. 용서가 없는 세상이라면 나는 그 사람에게 똑같이 밟을 것이다. 누군가 실수로 나에게 커피를 쏟는다면 나는 똑같이 커피를 뽑아서 그에게 쏟을 것이다. 점점 커져서 누군가 나의 다리를 부러트린다면 나역시 그 사람의 다리를 부러트릴 것이다. 만약 용서없는 세상이라면 모두가 서로를 경계하고 어떻게 보복할까 고민하는 얼굴로 가득할 것이다.
세상을 "용서"를 갈망하고 있다. "용서"가 없어서 허덕이고 있다. 용서가 풍성한 세상이라면 지금 우리의 삶 보다는 더 행복한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 용서는 전쟁을 그치게 하고 가족의 화목을 깨뜨리지 않으며 사회의 분열을 막아준다. 진정한 용서와 사과가 없기에 세상은 내가 받은 만큼 아니 그보다 더해서 돌려주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용서"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다 깊이 동감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용서하는 데는 인색하다는 것이다. 용서의 대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용서의 대가이다. 그 십자가 우리가 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용서의 대가...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크고 소중한 선물이다.
# by | 2007/09/18 23:49 | 그리스도인의 고민 | 트랙백 | 덧글(0)



